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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사회

이장님 우리 이장님 윤창호씨

김성수 기자 입력 2009.12.31 19:52 수정 2010.01.02 05:09

윤창호 이장이 말하는 효촌마을 이야기

↑↑ 윤창호(72세, 효촌마을 이장)
ⓒ 주식회사 임실뉴스
지난해 12월 어느날 34가구가 모여사는 임실군 성수면 효촌마을에서 30년째 이장을 맡아 마을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윤창호 이장(72)를 만났다.

윤씨는 현재 효촌마을에서 이장을 역임하면서 키토산작목 반장직을 맡고 있다. '키토산 세척 고추'의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높여 임실고추의 명성을 널리 홍보해 농가의 소득증대에 앞장서고 있다. 한마디로 마을내에서는 신지식인으로 통한다.

"조금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 이장을 맡았을 때는 80여 가구가 전형적인 시골 촌락을 이루고 살았는데 지금은 모두 고향을 떠나 도시로 떠나버렸죠. 요즘은 고향을 생각하면 가끔씩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자꾸만 줄어만가는 고향을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는 윤씨는 평소 주민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다.

지난 92년에는 효촌마을이 '화합선도마을'로 지정되는데 크게 공헌하고, 불우청소년과 청소년 가장세대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선도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 지난 70년 새마을운동 때는 '효촌협동'을 구성해 식량증산운동과 마을환경개선사업을 주민 자율적으로 추진해 주민들로부터 앞장서는 농민운동가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공로는 지난 06년 '자랑스러운 전북인 대상'을 수상했다.

그에게 고향에 대한 애정을 묻자 윤씨는 조부께서 '잊지 말자 우리 고향 효촌'이라는 마을 유래 집을 현재 쓰고 있는데 마을 유래집이 최종 완성되면 임실문화원에 기증해 내가 태어나고 자란 효촌마을의 추억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물려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고향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임실군 성수면에 자리한 효촌(孝村)마을의 유래는
원래는 소촌이라고 불렀다. 평지(효촌 입구 도로 주변), 갱변뜸담안 남쪽 냇가의 마을), 괴난터(효촌 북쪽으로 효자가 났다고 함), 버드내(담안 동북쪽 마을), 담안(평지 서북쪽 방천담을 쌓은 안쪽의 마을). 약 3백여 년 전 장수 황씨 (長水黃氏)와 남원 윤씨 (南原尹氏)가 정착하면서 부락을 형성해 왔으며 조선중엽 윤두표〈尹斗杓)란 사람이 효성이 지극하여 전라감사 김만길 (金萬吉)의 상주로 당시 숙종 왕으로부터 교지를 받고 정문을 세워 이를 효촌이라 했다한다. 효촌마을은 남원 윤씨 집성촌으로 효행이 뛰어나고 인심이 좋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효자비가 도로가에 웅장하게 서있고 비원이 가꾸어져 있다.

마을 앞에서 보면 소충사 성역화 사업으로 2003년 준공 이석용장군과 28의사를 모신 곳이다. 양지리 학당에 있던 소충사당을 이건했다. 소충 사는 칠월칠석에 향제를 올린다. 소충사 앞에는 넓은 주차장과 전면 축대 앞에 이석용장군의 사진과 함께 대구 형무소에서 지은 옥중시가 걸려있다. 사당 올라가는 오른쪽 길목에 소재지에서 옮겨간 조의 단이 있다. 주차장에서 뒤를 돌아 바라보면 고덕산이 손앞에 있다. 금동으로 들어가는 길목과 평지리 효촌마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평지삼거리 효자비를 지나서는 새보들, 제2오봉교 위 여수토(물넘이) 효조왕 낚시터다, 이곳은 왕방제로, 또는 오봉제로 부른다. 아침재(조치)는 721번 지방도로다. 하마 정거리는 하마비가 있어서 괴난터는 마을 북쪽에 남쪽에 면화봉이 보인다. 삼청리로 가는 몰고리 고개가 있다./김 영 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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