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면 외량리 이대근(95세)씨 부부는 한 달에 한번 외출하는 날만을 기다린다.
딱히 갈 곳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는 이들 부부에게는 병원도 방문하는 등 우리사무실에 들려 자장면을 시켜 먹고 언제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여름철 푸성귀가 나올 때면 “머리를 깍아주는 선상님 줘이”하시며 호박과 오이를 챙겨 오기도 한다. 항상 신세만 져서 볼 낮이 없다며 미안해하는 이들 부부는 두 번 세 번 뒤돌아보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대근씨 부부 마당에는 호박과 옥수수, 고추가 심어져 있어 고마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알콩 달콩 살고 있다. 지난해는 뒷동산에 참깨를 심었는데 참깨를 베어놓고 비가 내리자 할머니가 비닐을 덮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깜박 잊고 있던 어느날 뒷동산에 올라가 보니 비닐속에 덮여있던 참깨는 어느새 싹이나 숙주나물처럼 되어 이들 노부부는 오랜만에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다고. 이런 모습을 목격한 우리는 비를 맞으며 참깨를 거둬들이는 걸 도와주었다. 노부부는 늘 토닥토닥 다툰다. 사랑싸움이랄까? 할아버지는 가끔 귓속말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내가 죽거들랑 우리 할망구 좀 부탁혀”...
이렇게 할머니 걱정에 잠 못 드는 할아버지를 위해 올 봄 우리는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결혼 후 71년이 넘도록 마을밖을 떠나본이 없는 두 분을 위해 벚꽃 놀이를 시켜드리기로 했다. 꼬불꼬불 시골길은 두 분의 인생여정처럼 험하지만, 두 분의 활짝 핀 미소로 벚꽃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
“앗따 멀라꼬 여수까지 간당가 예가 여수보다 훨 낫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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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덕면 외량리 이대근(95세)씨 부부가 옥정호 주변의 레스토랑에서 서양음식을 드시며 즐거워하시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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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두 분이 한 번도 먹어 본적이 없는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 운암호 주위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처음 본 레스토랑 풍경이 낯설기만 한 이들 노부부는 화장실까지 들여다며 신기한 듯 기웃거렸다.
“참말로 좋네. 이런데선 멀 먹는 당가?” 우리는 치즈 돈까스를 시켜 잘게 썰어 할머니를 드리고, 할아버지는 말랑말랑한 치즈를 권했다. 서양음식을 처음 맛본 할아버지는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며 마냥 행복했다. 이날 노부부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마친 우리는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어느새 이들을 만난지가 2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엔 두 분다 귀가 잘 들리지않아 말이 통하지 않고 마음을 쉽게 열어주지 않아 힘든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딸보다도 더 소중하게 우리를 맞아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의 큰 힘이 되어준다. 두 분이 좀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두 분을 뵙기 위해 먼 길을 달린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이혼이 증가하고 삶이 각박해져 가지만 아직 우리 주위에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두 분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이 일(가정봉사원)을 시작했을 땐 남의 집에 가서 청소나 빨래를 한다는게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오래오래 사실 수 있도록 기도 한다. 김보숙기자